여야 의원·의대교수들, 의평원 무력화 저지 ‘결의’ 같았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 10월 3일 용산전쟁기념관 앞에서 대규모 결의대회 안철수·박주민 국회의원 연대사 통해 정부 정면 비판…“반드시 막아낼 것” 시국선언문 발표…더 이상의 고통과 굴욕 참지 않고 정부에 강력 저항 다짐
정부의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무력화 시도가 의대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대란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킨 의대교수들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새다.
더 이상 고통과 굴욕을 참지 않겠다며 휴일을 반납하고 한 자리에 모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의 눈빛에는 결의가 가득 차 있어 향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주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주관, 대한의사협회 후원의 ‘의평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가 10월 3일 오후 1시 용산전쟁기념관 앞 광장에서 열렸다.
의과대학교수들의 주최·주관으로 개최된 대규모 결의대회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발표 이후 처음이다.
이날 결의대회에 모인 800여 명의 전국의과대학교수 및 의대생 학부모들은 정부의 의평원 무력화 시도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세계로 도약하려는 대한민국 의료를 말살하려는 행태라는 데 입을 모았다.
정부의 강압적인 폭거를 참다못해 거리로 뛰쳐나온 의과대학교수들의 목소리에는 비판을 넘어 분노와 한이 서렸다.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은 “추석 연휴대란을 막았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을 보고도 참았는데, 이번 의평원 압박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다”며 “의평원 압박은 의대교수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정부가 초래한 의료붕괴를 막지 못했지만, 미래 의사들을 교육할 환경까지 무너뜨리게 할 수 없다”며 “의평원을 사수하기 위해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2,000명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증원으로 제대로 된 의학교육이 불가능해지자 정부는 의평원 무력화로 후진국 수준의 의사를 양산하려고 하고 있다”며 “우리의 투쟁은 의학교육의 정상화 및 대한민국 의료의 정상화가 이뤄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의 의과대학교수들은 국민들이 싸구려 의료에 건강과 목숨을 맡겨도 되는지 되물으며 의사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오세옥 부산대학교의과대학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갑작스러운 지방의대 정원 증원은 국민들에게 싸구려 의료를 제공하는 시발점이 된다”며 “붕어빵 찍어내듯이 의사를 양산하려는 정부의 자세에서 그 어떤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느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채희복 충북대학교의과대학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국립대병원들이 망해가고 있는데, 정부는 국가재정이 아닌 2조 원의 건보재정을 무한정 밀어 넣으며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고 있다”며 “의평원 무력화 시도는 대한제국 광혜원으로부터 지난 100년간 뿌리내린 세계적인 대한민국의 의학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윤태영 의평원 부원장은 곧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개정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윤태영 부원장은 “교육부의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것”이라며 “행정소송도 진행 중이니 앞으로도 자율적·전문적·독립적인 전문기구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도 정부가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시도를 무리해서 시도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생명이 내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돈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는 응원사에서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가 이렇게 타락했다는 점이 정말 부끄럽다”며 “현 정부는 하나의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리고 있는데, 이번 사태는 한국의료에 대한 일종의 테러와 같은 만큼 현재 가장 공포에 휩싸여 있는 집단은 현 정권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여당과 야당의 주요 국회 인사들은 연대사를 통해 너나 할 것 없이 반드시 정부의 의평원 무력화를 막아내겠다며 힘을 보탰다.
전국의과대학교수들과 같은 결의를 다진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정부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의사면허를 주는 것”이라며 “결국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어 “국민을 위해서 이 의료대란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며 “전공의와 의대생을 설득하기 위해 정부가 조건없이 대화의 문을 하루라도 빨리 열어야 한다”고 부언했다.
박주민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올해 국회 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의평원 무력화 시도를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며 “정부는 오로지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해 앞뒤가 맞지 않는 말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박주민 위원장은 “국회는 정부의 이런 행동과 태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의학교육이 정상화될 때까지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10여 년 전 의평원법 대표발의해 통과시킨 인연으로 결의대회에 참석한 박인숙 전 국회의원도 “의학교육의 최후 보루인 의평원을 무력화시키는 법이나 교육부의 장난같은 시행령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며 “2,000이라는 숫자는 그대로 둔 채 찔끔찔끔 내놓는 정부 대책들은 모두 ‘의료개혁’이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면피용 사탕발림”이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결의대회에 모인 전국의과대학교수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정부에 최후통첩했다.
선언문을 낭독한 박평재 고려대학교의과대학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현 정부는 엑셀레이터를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마구 밝아 국민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급발진 정부’, 가야할 방향을 반대로 인식해 국민들에게 대혼란을 야기하는 ‘역주행 정부’, 모두가 운전대를 잡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라고 끝까지 우기는 ‘음주운전 정부’ 3가지로 정의 내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평재 교수는 “전국의대교수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에 요구한다”며 “하나는 의평원 무력화 시도 중단, 또 하나는 2025년도 의대정원 증원부터 다시 논의, 다른 하나는 허울뿐인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및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파기, 마지막 하나는 불법 증원을 밀어붙이고 의학교육을 파괴하려는 책임자들의 즉각 처벌”이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