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먼저다

2024-08-12     병원신문

의사들이 외과계열 전공을 기피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낮은 수가 탓도 있지만, 의료사고에 따른 의료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큰 데도 원인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의과 의료분쟁 조정 신청건수는 총 1,905건.

이를 전문과목별 의사 1천명당 조정 신청건수로 보정해 보면 외과 22.0건, 정형외과 57.9건, 신경외과 75.5건, 흉부외과 32.2건, 응급의학과 30.2건으로, 전문과목별 평균 18.4건에 비해 작게는 19.5%, 많게는 4배 이상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의료분쟁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보니 외과계열 전공을 꺼릴 수밖에 없고, 외과계열을 전공한 의사조차 필수의료 현장을 등지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책임보험이나 공제조합에 가입했을 경우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의료진에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관건인데, 지금까지 환자단체의 반발 속에 이렇다할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필수의료 붕괴와 맞물려 그 해결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관련 연구용역에 들어간 것이 그나마 유의미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보건의료기관 개설자의 의료배상공제조합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가 의사들을 다시 필수의료 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병·의원 수는 3만7,137개소.

이 중 33.2%인 1만2,317개소가 민간보험사의 의료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고 33.7%인 1만1,701개소는 대한의사협회 의사배상공제조합에 들어있다.

전체 병·의원의 35.3%에 해당하는 1만3,119개소는 의료배상책임보험이나 의사배상공제조합 어느 곳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개정안은 이런 병·의원들을 의료배상책임보험이나 의사배상공제조합에 모두 가입시켜 의료분쟁의 과도한 형사화를 막고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완화하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책임보험이나 배상공제를 통해 임의합의나 조정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의료소송으로 갈 경우 소송비용과 사건종결 때까지 3년 가까이 소요되는 데서 발생하는 심리적·경제적·시간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통한 형사처벌 특례를 전제로 하지 않은 데다 의료인의 의료행위로 인한 분쟁 배상을 의료기관 개설자로 특정한 것은 다시 검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개정안 취지에 공감하기 앞서 공제가입의 주체나 법정 배상한도, 미가입자에 대한 제재방법 등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많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개정안은 좀 더 다듬은 다음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