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철회하라”
정부와 의료계 간 뒷거래…정부 의견수렴에 시민사회 동의 없어 필수의료 기피 문제 해소하겠다더니 미용‧성형까지 형사처벌 면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철회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경실련은 2월 29일 정부는 필수의료 의사확충을 위한 불가피한 대책이라 주장하면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의대정원 확대로 들끓고 있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한 도 넘은 의사 특혜책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의료계 간 뒷거래라고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의대정원 확대는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국가의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이지 환자들의 형사재판청구권까지 침해하면서 의사에게 구걸할 정책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특례법의 골자는 의료인이 책임보험 및 공제에 가입하면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고, 추가로 종합보험이나 공제에 가입하면 필수의료행위의 경우 중상해가 발생해도 공소 제기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경실련은 “정부가 해당 내용을 지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서 처음 발표했을 때는 사망사고까지 포함할 것인지 미용‧성형 분야는 제외할 것인지 추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의료계의 요구대로 사망사고와 미용‧성형 분야도 가리지 않고 모두 포함한다고 결정했다”며 “의료계와의 최악의 야합이자 환자를 위험에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실련은 특례법이 위헌소지가 크다고 꼬집었다.
특례법 제정을 골자로 한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는 기존에도 환자피해 구제가 어려웠던 현실에 더해 앞으로는 의사가 돈 내면 아예 면죄부를 부여하겠다는 전무후무한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경실련은 “기존에도 의료사고 및 사건이 발생하면 모든 정보가 의료인 측에 있기 때문에 환자가 직접 관련 사실 및 인과관계 등을 밝히고 스스로 권리구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며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의료사고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하고 특히 그 대상을 일부 직역종사자로 국한한다는 것은 형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다”고 반박했다.
현재 필수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 의사와도 상관없이 중상해 및 사망에 이르러도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대목과 정확히 일치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특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절차에 참여해야 적용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절차를 이용할 경우 환자의 입증책임 부담을 경감하고 충분한 보상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주장이야 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감언이설이다”며 “의료인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의료중재원의 유명무실한 감정제도와 강제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충분한 보상은 환자들을 향한 희망고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또한 법제정에 있어 사회적 동의가 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부는 작년 11월부터 의료계, 환자단체,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를 통해 총 9회에 걸쳐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면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처럼 발표했으나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경실련의 입장이다.
협의체에서 정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예로 들며 의료사고도 보험가입 시 형사처벌을 면제하자고 주장했고, 단체들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과 같이 의료인에 입증책임을 두는 조치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
경실련은 “그렇게 작년 12월 6차 협의체 회의에서 특례법 제정 논의를 중단하고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인 부담 완화의 핵심인 의료감정제도 개선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협의체의 결정을 무시한 채 특례법 제정을 발표했고, 의료계의 모든 요구를 수용해 법제정을 강행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공청회를 위해 공개된 특례법안은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가 진료과를 가리지 않고 적용돼 의료계에 대한 특혜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경실련은 “정부는 필수의료 인력이 비필수 분야로 흡입되는 것이 왜곡된 생태계라며 원인으로 높은 의료사고 부담을 지적하고 수술행위가 잦은 미용‧성형 분야까지 특례를 적용할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정작 필수의료분야와 미용‧성형 등 인기과 사이에 차별성을 두지 않은 채 모든 분야 의료인에게 혜택을 주는 식으로 법안 설계를 마쳤다”고 우려했다.
모든 의사에게 면죄부를 주느라 안그래도 심각한 필수의료 분야 기피와 붕괴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게 경실련의 생각이다.
경실련은 “피해가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오는 정부와 의료계의 정치적 뒷거래는 더 이상 유지돼선 안된다”며 “환자의 재판받을 권리는 포기할 수 없는 기본권으로 결코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불법행위로 일관하는 의료계에 끝까지 결연하고 단호한 태도로 국민만을 바라본 정책 마련에 매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