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보험사가 국민건강 걱정한다?…“가당치 않다”
건보공단·심평원, 건강보험 공공 의료데이터 자료제공 찬반 토론회 개최 공급자·자영업자·소비자단체, 민간보험사에 데이터 제공 절대 반대 한목소리 가명 정보도 금융 정보와 결합하면 개인정보 유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건보노조 반대 시위로 토론회 지연…의협, 토론회 명칭 두고 불쾌감 표시
공급자, 자영업자, 소비자, 노동자 모두 국민건강을 위해 방대한 양의 국민건강보험 공공 의료데이터를 개방해 달라는 민간보험사의 요구에 고개를 저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보험회사들이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국민을 위한 보험상품을 설계하겠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다는 것.
게다가 가명 정보라고 하더라도 금융 정보 등과 결합하면 개인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매우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5월 17일 건보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세미나실에서 ‘건강보험자료 민간보험사 제공 찬반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건보공단 및 심평원의 그간 건강보험자료 제공 경과 발표에 이어 공급자단체, 자영업자단체, 소비자단체, 전문학회, 민간보험사 대표, 전문가, 국회 관계자, 보건복지부 등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다.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각각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국민들에게 공공데이터 및 통계자료의 형태로 일부를 제공했으며, 정부와 학계의 기초연구 수행과 보건의료정책 연구 등에도 자료 지원을 했다
다만 민간보험사 자료제공은 정보 주체의 이익침해 우려 등 이해관계자 간 의견 차이가 큰 중요한 사안으로, 이를 좁히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속해서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민간보험사 데이터개방 가이드라인(중재안)의 방향을 지난해 10월 마련했고, 해당 내용을 두고 찬반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가 이번 토론회 개최의 목적이다.
참고로 중재안은 △특정 집단이나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연구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음 △데이터를 왜곡하거나 오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보공단과 학계가 공동연구 형태로 참여 △연구결과 활용 시 부적절하게 활용하지 않도록 사전 동의 획득 등으로 구성됐다.
공급자단체…대한병원협회·대한의사협회 ‘반대’
우선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 등 공급자단체는 국민의 데이터를 공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산업적인 활용을 목표로 제공하는 것에는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김성현 대한병원협회 헬스케어위원회 자문위원은 민간보험사의 보험상품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한들 공공성을 지닌다고 어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선을 그었다.
김성현 위원은 “건강보험이 미처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민간보험이 책임지고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민간보험이 공공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다”며 “공공의 자산인, 그것도 국민이 직접 생산한 공공 의료데이터를 민간이 사용하겠다는 것은 너무 과도한 요구사항”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데이터 제공에 있어서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이자 정보의 주체인 국민들이 단 한 명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게 김성현 위원의 생각이다.
김 위원은 “제약회사가 자체적으로 많은 연구를 하는 것처럼 민간의 영역은 민간의 규칙에 따라가고, 공공의 영역은 공공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자”며 “국민의 대다수가 그동안 보험사를 상대한 경험을 통해 느낀 총체적 판단에 따라 혹시나 불이익이 생길까 봐 데이터 제공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의료기관조차 환자 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더욱이 민간보험사가 이를 정말 원한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국민들의 컨센서스를 꺾는 것이 우선”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문병준 한화생명 COE부분 DataLAB 과장이 민간보험사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김 위원은 보험회사를 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고 달랬다.
김 위원은 “민간보험사들이 손해율 계산을 통해 이익을 최대화하는 상품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며 “보험사를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 양질의 공공데이터를 제공해 달라는 식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만 찾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민간은 민간의 영역에 물길을 대자는 것 뿐”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민간보험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걱정되거나 직접 연구를 진행하는 게 힘들다면, 펀딩 등을 통해 중립적인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연구자에게 데이터 생산을 요청하는 것도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민간보험사가 언제부터 국민건강을 위해 보험상품을 설계했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김종민 이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보험사가 손해를 감당하면서까지 국민의 몸을 걱정해 보험상품을 설계한다고 하면 그 누가 믿겠냐”며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공공데이터를 통해 입맛에 맞는 보험상품만 만들어 내려는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정말 가당치 않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건강보험자료가 제공될 때 아무리 가명처리 됐다고 하더라도 금융 정보 등과 결합하면 특정 개인을 얼마든지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예민한 정보를 동의 없이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면 안 된다며 날을 세운 김종민 이사다.
김 이사는 “가명처리를 했다 한들 정보유출 위험이 있는 국민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해도 된다는 컨센서스는 현재 그 어디에도 없다”며 “무언가 주장을 할 때 기본적인 사항인 여론형성 과정도 없었고, 공익성조차 없기에 한 두 번의 토론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특히, 국민들이 이 사실을 꼭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이사는 찬반토론회로 알고 참석했는데, 마치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건강보험자료제공을 결정한 채로 공급자단체가 이를 동의한 것 마냥 토론회 명칭을 설정한 것에 어떤 저의가 있냐며 항의했다.
김 이사는 “현수막과 언론 보도자료에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찬성을 전제로 가이드라인을 논의하는 자리라면 애당초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미 배포한 보도자료 등의 문구를 정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건보공단 관계자는 “배포한 보도자료 어디에도 가이드라인이 확정됐다는 표현은 없다”며 “가이드라인을 이미 명확화한 게 아닌 만큼 오해가 없도록 해당 문구를 빼겠다”고 해명했다.
자영업자단체·소비자단체·노동단체·의료전문가 ‘반대’
자영업자·소비자단체와 의료전문가 등도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공공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에 공급자단체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다.
결론은 아직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민간보험사의 데이터개방에 대한 요구가 현재로서 불법은 아니나 소비자 입장에서 민감한 건강정보 활용에 대한 우려가 있고, 보험회사도 이를 해결하거나 설득할 뚜렷한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 현시점에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도 “전 국민의 건강정보는 국가가 건강관리를 위해 사용한다고 해서 수집을 허락한 것이지, 민간보험사 활용 등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원천적으로 수집을 차단했을 것”이라며 “신중 또 신중해야 하는 것이 건강보험이고, 건강보험에 대비되는 게 민간보험이니 국민들의 신뢰와 정보 주체로서의 국민 수준이 쌓이기 전까지 자료제공에 공감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 자격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 센터장은 민간보험사의 ‘무임승차’ 의도에 불편한 표정이 역력했다.
김명희 센터장은 “건강보험 빅데이터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환자, 의료기관, 의료인, 건보 재정이 투입돼 만들어진 엄연한 공적 자원”이라며 “많은 제약사와 의료기기 회사들이 상당한 규모의 비용을 들여 임상시험을 수행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이들처럼 독자적 연구 개발에 투자하지 않은 채 막대한 사회적 자원이 투여된 공공자원을 보험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제공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임승차와 다름없다”고 밝혔다.
또한 개인 스스로 ‘옵트-아웃(opt-out)’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상황에서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국민들의 최후의 보호자가 됐으면 한다고 직언한 김 센터장이다.
김 센터장은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두 기관은 환자들의 정보와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주체이니 공익적 연구를 적극적으로 선별하고 촉진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토론회 참석을 요청받은 노동시민단체 측은 애당초 정상적인 토론회가 아니었다며 참석 대신 피켓 시위와 기자회견으로 대신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과 함께 “국민의 개인의료정보를 단 한 줄도 민간보험사에 내어줄 수 없으니 당장 토론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고 이 때문에 토론회는 40분가량 지연됐다.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건보노조는 “이미 건강보험 자료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채로 가이드라인 토론회를 연 것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식행위”라며 “만약 정부가 공공성보다는 의료의 사유화와 민영화로 대표되는 민간보험사에 막연한 신뢰를 보낼 의도를 갖고 이번 토론회를 열었다면, 향후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회 관계자들도 우려 표명하며 부정적 시선 보내
복지부, “국민 편익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가야”
토론회를 통해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참석한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들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긴 매한가지였다.
배봉수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실 보좌관은 “국민들은 내 질병 정보가 민간보험사로 넘어간다고 하면 99% 반대할 것”이라며 “건보공단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워낙 민감한 문제여서 이런 토론회를 연 것 같은데 많은 과정과 토론을 거치더라도 제한적일 것 같다”고 전했다.
김봉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보좌관도 “가입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건강보험, 그 건강보험에 가입된 엄청난 수의 국민 중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자료 제공 방안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고 부당한 일”라며 “소비자와 민간보험사 간의 신뢰 기반이 전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니 가이드라인(중재안)은 원점에서 재검토해 정보 주체인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서 재반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건복지부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인 건강보험 데이터의 경우 자료제공과 관련해 여러 쟁점 해소 과정에 있어서 국민 편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손호준 복지부 보험정책과 과장은 “건강보험 데이터는 사회적 자산이므로 소중하고 의미 있게, 그리고 국민 편익을 위해 활용돼야 한다”며 “오늘 토론회를 통해 민간보험회사가 주장하는 연구의 구체적인 목적과 실체가 궁금해졌는데, 만약 국민 편익에 도움이 된다면 이해관계자들끼리 목표와 방안을 논의하면서 쟁점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