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병원장 구성욱)이 특별한 후원금을 전달받았다.
희귀질환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OTT 기업 ‘라프텔’을 공동 창업한 신형진 씨가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 3천만원을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신 씨가 7년 동안 급여를 저축해 모은 돈으로, 중증 호흡 질환자들의 치료에 쓰일 예정이다.
병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달식 행사에는 신형진 씨의 어머니 이원옥 여사가 참석해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구성욱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을 비롯해 신형진 씨의 주치의인 강성웅 재활의학과 교수(호흡재활센터장), 이영목 강남세브란스병원 기획관리실장, 이정일 연세의료원 발전기금사무국 강남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신형진 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신형진 씨는 희귀병인 선천적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자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온몸의 근육이 평생에 걸쳐 서서히 퇴화하는 병이다. 점차 병이 진행되면 호흡을 담당하는 근육마저 약해져 숨쉬기조차 쉽지 않다. 결국 기관 절개를 통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게 되는데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호흡재활치료는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의 희망이다. 호흡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을 완화하고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낮추며 환자가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돕는 치료를 일컫는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소장인 강성웅 교수가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호흡 근육을 단련해 환자가 스스로 호흡하도록 돕는다. 기관 절개를 피할수 있어 포기한 학업을 이어가거나 기업에 취직하기도 한다. 환자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신형진 씨 역시 호흡재활을 계기로 학업을 이어간 사례다. 오랫동안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와 연을 맺어왔다. 온몸이 마비 상태고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 뿐이지만 호흡재활 치료로 인공호흡기 사용 시간을 줄여왔다. 결국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공동 창업으로 애니메이션 OTT 회사까지 일궈냈다.
신 씨는 서면을 통해 “살아오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제가 받은 사랑을 주변에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호흡재활을 앞둔 다른 환우분들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주치의인 강성웅 교수는 “호흡재활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또 다른 희망을 키우는 상황이 감격스럽다.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낸 신형진 씨의 이야기가 신경근육계 희귀난치질환을 향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08년부터 호흡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의료인 대상 워크숍과 환자 및 보호자 교육을 비롯해 어려움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졸업을 앞둔 환우를 응원하는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최관식·cks@kha.or.kr>
아래는 신형진 씨가 기부금을 전달하며 주치의 강성웅 교수에게 전달한 편지.
안녕하세요, 강성웅 교수님.
이렇게 새삼스럽게 교수님께 편지를 쓰려니 조금 쑥스럽네요. 이번에 그동안 강성웅 교수님과 호흡재활센터, 그리고 무엇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받은 사랑과 은혜에 작게나마 보답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기부금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다시금 강성웅 교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적습니다.
되돌아보면 저의 인생 40년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태어나서 얼마 못 살고 죽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 가족, 지인분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근육병으로 인해 호흡에 문제가 생겨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나날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를 비롯한 근육병 환우들은 호흡 근육이 약해서 감기에라도 걸리면 금방 폐렴으로 악화돼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특히 대학시절에는 크게 아파서 장기간 입원 생활을 해야 했지요. 대학 졸업은커녕 집으로 돌아갈 수나 있을지도 모르는 암담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천만다행히도 강성웅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옮기고 호흡재활치료를 통해 숨이 트이면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고, 꿈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대학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도 무사히 졸업하고요.
그후 저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박통합과정을 수료하고,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해서 현재는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안구마우스로 컴퓨터를 조작해서 매일 재택근무를 통해 업무를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만약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렇게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을 거에요. 그래서 그동안 일을 하면서 받은 급여를 틈틈히 저축해서 모았는데, 이 돈을 어디에 쓰면 가장 의미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고민해보니, 강성웅 교수님이 하시는 호흡재활치료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기부금을 전달드립니다.
호흡으로 힘들어 하고 고생하는 근육병 환우들을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당시 아무도 몰랐던 호흡재활 분야를 미국에서 공부해 오시고 한국에서 최초로 치료를 도입하신 강성웅 교수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도, 그리고 근육병 환우들도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없었을 거예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회생활하면서 'The Best 보다는 The Only One이 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강성웅 교수님이야 말로 대한민국 유일의 호흡재활 전문가이시자, 근육병 환우들의 대부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근육병 환우들을 위해 호흡재활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24년 8월 14일
교수님으로 숨을 얻은 환우 신형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