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제2차 건강보험종합계획에 가치기반의료 개념 포함”
환자 중심의 보건의료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해 혁신적인 지불제도 개편이 요구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ACO(책임의료기관)와 같은 가치기반 지불제도를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료계는 공감을 하면서도 사회적 논의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 도입 주장은 현행 행위별 수가제가 공급자가 많은 양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자원과 비용을 소모하는데 반해 투입된 자원에 비해 환자의 건강 수준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비효율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즉 행위별 수가제는 가격이 낮게 책정된 의료분야는 과소진료 현상이, 가격이 높은 서비스는 과잉진료 현상이 나타나 과목별 불균형을 넘어 과목별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서비스 단가(수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의료공급자들은 낮아진 단가만큼 다시 의료서비스의 양을 늘리는 방식으로 수익 총액을 보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이에 노인의료비 증가 등 건강보험재정 고갈을 막기 위한 혁신적인 지불제도 개편, 즉 가치기반 지불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은 7월 5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가치기반 의료, 왜 중요한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제4차 의료현안 연속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의 핵심 주제인 가치기반의료는 여러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환자의 건강지표가 좋아질수록 재정적으로 공동의 인센티브를 갖는 점에서 여러 보건의료 직역들의 협력과 소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라는 평가다.
미국은 ACO(책임의료기관)과 같은 의료기관 연합을 통해 서비스의 양보다 질적으로 책무를 공동으로 이끌어내 재정효율, 건강향상, 환자 만족도가 올라가는 효과를 경험하고 있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시범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병원 의학과 오주환 교수는 가치기반의료가 환자, 의사, 보험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가치기반의료는 결과 중심의 의료다. 가치기반의료의 지불 방식은 환자가 제공받은 행위의 양이 많던 적던 현재 건강상태를 잘 유지하는 결과에 대해 정액으로 전체를 나눠 정기 지불하고, 건강상태를 잘 유지했을 경우, 그 지불된 금액을 그대로 승인하고 건강상태를 잘 유지받지 못했다면 지불된 비용중 일부에 대해 차감하고 지불하는 정산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미국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오바마 케어라는 가치기반의료를 실험적으로 시행해 현재는 시범사업을 넘어 하나의 제도로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건강향상과 선호 지향(환자의 건강결과에 대한 지불 강조로 환자의 건강유지에 집중) △보험자와 공급자 공동의 안정적인 재정관리 인센티브(건강향상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더 많은 보상 제공으로 이익창출) △의료공급자의 자율적 선택과 의사결정 권한 향상(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환자 건강 향상시키는 방식 선택 인센티비) △공유자원의 효율적 활용(공유자원인 의료보험재정의 효율적 활용해 건강유지에 기여하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에게 보험자가 이익공유) 등을 언급하며 가치기반의료가 의사와 환자, 보험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한국에서 가치기반의료를 진행할 때 정부가 정하는 것보다 행위별 수가 거래방식이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환자와 의사들은 기존대로 서비스를 하고, 새로운 가치기반 거래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환자와 의사들은 가치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옵션을 늘려주기만 하고 강제하지 않는게 가장 좋다”면서 “가치기반의료의 다양한 모습으로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불도 다양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선호를 스스로 디자인한 거래방식으로 가치를 만들어 가보고 싶은 의사와 환자들이 모여라는 식의 시범사업을 전국에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이같은 제안에 의료계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 의료체계의 변화 필요성에 대서는 공감을 하면서도 가치에 대한 개념적 합의가 모든 이해당사자 간에 이뤄져야 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가치기반의료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으나 가치기반의료에 대한 개념, 정의 등에 대해 모든 이해당사자, 의료현장이 같은 수준에서 이해하고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ACO와 같은 가치기반의료가 의료비 절감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모델로 전세계에 조명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HMO와 같은 관리의료(managed care)로 일차의료를 책임지는 주치의가 환자에 대한 기본 관리와 전문의 의뢰에 책임을 지는 제도가 자리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 가치기반의료가 수월했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다르다는 것.
우 원장은 “우리나라는 의사 대부분이 전문의로 구성돼 있고 주치의 제도에 대한 거부감 역시 강해 의료비 절감분에 대한 공급자의 공유가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네트워크에 참여한 공급자들끼리 절감분에 대한 합의와 배분이 사전에 약속돼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현재는 환자가 자유롭게 원하는 의료기관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지만, 가치기반의료 체제가 도입되면 환자의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한 공급자들로만 서비스 이용이 제한돼 의료 이용 선택에 있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소비자 측면의 문제도 거론했다.
우 원장은 ““우선 일차의료 기관을 중심으로 팀체제 기반의 만성질환 관리나 커뮤니티케어 모델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접근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면서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점차 병원급까지 참여하는 네트워크 모델로 확장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 원장은 “가치를 기반으로 의료체계를 변화시킬 필요성은 있다”면서 “그러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시간이 그동안 충분하지 않아 보다 다양하고 심도 깊은 논의와 시범사업 등 충분한 준비를 통해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정과제에 포함된 공공정책수가를 현재 우리의 보건의료 분야, 필수의료 분야 문제를 해결하는데 충분히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충분한 재정투입을 통해 의료의 공익적 기능, 의료기관의 공익적 기능에 지원해서 국민의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것이 가치기반 의료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보다는 제2차 건강보험종합계획에 가치기반의료에 대한 개념을 포함한다는 생각이다.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보장혁신과장은 “가치기반의료 시범사업을 바로 기획하기보다 오는 하반기 제2차 건강보험종합계획 안에 이러한 가치 기반을 위한 정신을 천명하고 기본 방향성 안에서 시범사업들을 착실하게 만드는 작업들이 더 중요하다”며 “제2차 건강보험종합계획을 만드는 과정속에 가치기반의료 시범사업들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현장에서 제도들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