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병상 미만 중소병원 퇴출 근거 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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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병상 미만 중소병원 퇴출 근거 미약
  • 오민호 기자
  • 승인 2019.02.1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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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 교수 “의료이용 연구 하나로 규제정책 논거 활용은 정책적 만용”
본인부담 높이거나 의사의 통제 등으로 ‘의료수요 대처 기전’ 마련 바람직
서울의대 김윤 교수의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 구축 연구가 거센 비난의 직격탄을 맞았다. 하나의 연구 결과만을 가지고 3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 퇴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규제입법을 제안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박형욱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2월14일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주최한 ‘우리나라 의료환경에서 중소병원의 역할과 중요성 토론회’에서 300병상이라는 획일적 기준을 갖고 종합병원을 퇴출시키는 규제입번을 추진한다면 수가정책, 규제정책에서 사실상의 불이익을 받아 온 중소병원에 종합병원 퇴출이라는 극단적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 구축 3차 연구를 통해 300병상 미만 급성기 병상의 공급은 입원이용과 재입원을 증가시키고 자체충족률과 사망률을 개선하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나 지역거점 의료기관에 의해 공급되는 병상이 많을수록 중진료권의 자체충족률이 개선되고 입원환자의 사망과 재입원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면서 신설 종합병원의 병상기준을 300병상 이상으로 상향조정하고 300병상 미만 병원은 회복기 병원으로 기능을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입법을 제안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학자의 연구와 규제입법 간의 엄청난 간극을 무시하는 무분별한 의료정책학자들이 있다”면서 “의료이용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연구를 논거로 삼아 병원의 퇴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규제입법을 한 예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소한 이러한 규제입법을 제안한다면 규제입법의 실례와 성과를 검토한 후에 제안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

지원은커녕 중소병원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종합병원 퇴출을 운운하는 것은 너무 경솔하다는 의미다.

이어서 청구자료를 이용한 의료이용 연구 하나를 근거로 종합병원 퇴출이라는 규제정책의 논거로 활용하는 것은 정책적 만용이자 수많은 환자를 살리는 중소병원 의료진에 대한 모독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2012년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위암사망률이 서울성모병원이 아산병원이나, 서울대병원에 비해 330% 높고 세브란스병원은 415%가 높다고 이를 근거로 서울성모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위암수술진을 퇴출시켜야 하는지아니면 위암수술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서울성모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위암수술진이 다른 기능을 하도록 전환, 유도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박 교수는 200~300병상 사이의 병상을 가진 병원에서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고 오히려 200병상 미만. 600병상 초과 병원은 규모의 비경제가 나타나는 해외 연구결과를 근거로 김 교수의 연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정 병상수 미만에서 의료의 질 지표가 악화된다면 병상이 일정 규모 이상 증가할 때도 의료의 질 지표가 악화되는지 학문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음에도 김 교수의 연구에는 이런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고 비난했다.

이는 의료전달체계 왜곡의 정점에 있는 대형대학병원에는 손도 대지 못하면서 중소병원에만 칼을 휘두르려는 편향된 관점이라는 것이다.

특히 퇴출 규제입법 효과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상상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의료이용지도 연구를 통해 김윤 교수는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을 퇴출하는 규제입법을 제안한 상태지만 문제는 그런 규제입법이 부작용 없는 바람직한 정책효과를 만든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그냥 바람직한 정책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다른 나라의 의료정책 사례에서 법으로 획일적으로 병상기준을 변경해 급성기 병원의 허용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바람직한 정책효과를 만든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의료이용 연구는 규제정책이 아니라 조장정책에 활용하는 것이 분별있는 정책적 사고”라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문제에 대해선 의료보장과 의료전달체계와 연결해 설명했다.

의료보장은 돈 없는 가난한 사람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지만 필연적으로 의료수요를 증가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보장체계 내에 급증하는 의료수요에 대처하는 기전이 없다면 의료보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의료수요에 대처하는 방법은 본인부담을 높이거나 전문가인 의사가 통제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게 박 교수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영국 NHS가 지속가능한 것은 냉정하게 의료수요에 대처하기 때문으로 일차진료에 대한 접근은 철저히 보장하나 예약하고 기다려야 하며 상급병원에 대한 접근은 일차진료의가 허락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정책의 문제점은 관련된 사람들 모두 의료보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할 뿐 의료수요에 대처하는 기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며 “심지어 의료정책학자도 듣기 좋은 발언만 하고 있어 그런 불균형적 정책의 극단이 문재인 케어다”고 평가절하했다.

대형 대학병원 위주의 수가정책과 규제정책에 대해서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수많은 규제가 규제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대학병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전공의 전임의 등 상대적으로 값싼 의료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대형 대학병원의 구조가 의료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300병상을 기준으로 사망률이나 재입원율에 차이가 나타난다는 결과는 여러 가지 요소들의 종합적인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단순히 종합병원의 병상기준을 높이면 진료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은 근거가 전혀 없다며 수가정책, 규제정책에서 사실상의 불이익을 받아 온 중소병원에게 종합병원 퇴출이라는 극단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보건의료정책분야의 권력독점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박 교수는 “정책 수단에 대한 분별의식이 거의 없는 보건의료정책학자들이 적지 않다”며 “의원, 병원, 종합병원 등 종별 구별에 집착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행정과 보건의료정책학자들의 화석화된 관념과 함께 보건의료정책분야의 권력 독점이 너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만일 이런 보고서 하나를 논거로 수많은 종합병원을 퇴출시키는 규제입법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권력의 횡포이자 정책에서의 이해충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수가정책, 규제정책의 피해자인 중소병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무분별한 정책이 추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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