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바스병원 계기로 인수합병 법령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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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바스병원 계기로 인수합병 법령 정비
  • 최관식 기자
  • 승인 2017.09.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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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에 인수·합병 조항 없어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 가능성 높아
의료법인 인수·합병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국내 법체계에서 소유자는 그대로 두되 경영난에 빠진 병원에 개인이나 법인이 자본 참여를 통해 법인이사회 구성 권한을 부여 받으며 병원 운영에 참여하는 회생 방식이 정착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호텔롯데의 보바스기념병원 인수 여부가 9월21일 결정될 예정인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법령 정비 등 후속 조치 마련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이번 사례를 계기로 그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의료법인 인수·합병 관련 법령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료법인 설립 기준 등은 명시돼 있지만 인수나 합병 등에 관한 구체적인 조항은 포함돼 있지 않다.

관계법령에 언급돼 있지 않은 만큼 의료법인 매매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동안 개인 투자자에 의한 인수는 공공연하게 이뤄져 왔다.

비영리법인 특성상 금지돼 있는 소유권 이전 대신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법인이사회 구성 권한을 부여 받는 방식이다. 이 경우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호텔롯데 역시 이러한 법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호텔롯데는 보바스병원을 운영 중인 늘푸른의료재단에 600억원을 무상 출연하고, 5년간 2천300억원 등 총 2천900억원을 투입하는 대신 재단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소유권만 없을 뿐 사실상 늘푸른의료재단의 주인이 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가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불가’가 아닌 ‘우려’라는 표현을 기재한 것도 법리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재판부에 “호텔롯데가 실질적으로 법인 운영에 관여함으로써 인수합병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법원의 판단 여부와 관계없이 이러한 법리적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조만간 법령이나 제도 개선 검토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관계자는 9월20일 전문기자협의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바스병원 사례는 실질적인 의료법인 인수로 보기 어렵지만 위법 소지를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의료법인 인수‧합병과 관한 제도 정비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료법인이 비영리법인에 해당하는 만큼 의료법보다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판단이다.

의료법인에 대한 출연은 얼마든지 허용하지만 이사회 구성권 등이 부여되지 못하도록 법령에 명시, 아예 법인 운영 참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

국회에서도 이번 보바스병원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기업과 의료기관이 얽혀 있는 사안인 만큼 향후 제도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호텔롯데의 보바스병원 인수는 대기업의 병원산업 진출과 의료영리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관계 법령이 미흡한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시각은 좀 다르지만 병원계 역시 서울회생법원의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을 요구해온 병원계는 보바스병원 사례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한 중소병원 병원장은 “부실 의료법인의 경우 인수합병 금지로 인해 파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들이 의료기관으로 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퇴로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장은 “현행 법령상 의료영리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공공연한 비밀인 음성적 인수보다 양지로 끌어내 철저한 관리를 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늘푸른의료재단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입찰에 참여한 호텔롯데가 총 2천900억원을 투입키로 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서울회생법원 제14부(재판장 이진웅 부장판사)는 9월19일 보바스기념병원을 운영하는 늘푸른의료재단의 회생절차와 관련한 관계인 집회를 열고 호텔롯데의 회생계획안을 가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회생계획안 인가 결정을 9월21일로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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