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소망]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 잃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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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소망]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 잃지 않는 것
  • 병원신문
  • 승인 2016.01.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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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인 새해소망-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외과계 중환자실 손수진 간호사

‘다사다난 多事多難’ 말 그대로 여러 가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던,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매년 한 해의 출발선에 섰을 때 갖가지 방대한 계획들을 세우며 분명 활기차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 해의 마무리는 늘 스스로를 온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소박하게 매듭짓게 됩니다. 곁에 함께 머무르는 동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소중함 들을 하나씩 떠나보내고서야 깨닫게 되는 때가 올해도 이렇게 무심한 듯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올 해도 쉴 새 없이 참 많이 뛰어다녔고 그 속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냈습니다. 외과 계 중환자실이라는 공간 안에 있으면서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들 그리고 누군가의 동생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가 갈수록 처음보다는 참 많이 무뎌졌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무서울 만큼 참 많이 담담해졌습니다. 기계를 보고 있는지 환자를 보고 있는 건지 분간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어떤 하루도 있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며 물 한잔 마시는 일도 사치인 날도 많습니다.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죽음을 그저 함께 기다리는 일인 날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도 그 속에서 매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 봅니다. 훈련 중 경추를 다쳐 사지마비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스무 살 유도선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오프인 날 집에서 싸온 김밥을 웃으며 함께 나눠먹는 일뿐 이었습니다.

그 순간이나마 그저 다 잊고 모두 내려놓고 함께 웃을 수 있기에… 사실 해 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혀 안쪽 악성종양으로 먼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홀로 와서 수술을 하고 기관절개술 후 중환자실에 입실한 러시아 아저씨와 손짓과 발짓에 표정까지 모두 동원해 소통합니다. 종이를 한 장 달라고 하더니 ‘KAMSA=감사’라고 써 보이는 아저씨에게 휴대폰에 담겨있는 지극히 제 취향의 음악을 틀어드렸습니다. 엄지를 번쩍 들어 보이는 아저씨… 그렇게 우리는 또 언어가 필요 없는 소통을 나눕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늘 잊혀지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가장 긴박했고 가장 아팠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 속에서 함께 했던 저 또한 그들의 지나간 기억 속에서 악몽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어쩌면 잊혀져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으로 매번 근무를 시작합니다. 기억에 남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억 속 그 순간이 ‘악몽’이 아닌 ‘추억’이 될 수 있도록 곁에서 그 순간을 함께 지키겠습니다.

하루의 근무를 마무리 하며 매번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그 분의 눈을 마주 보는 데에 얼마의 시간을 썼는지... 그 분의 손을 잡아주는 데에 얼마의 시간을 썼는지... 그렇게 오늘 나는 그 안에서 얼마나 시간을 제대로 썼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이렇게 하루를 반성하고 다시 새 하루를 다짐하며 이제 또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있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매일을 반성하는 이유이자 매 순간 충실 하려고 애쓰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발선... 그렇게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늘 그렇듯이 생각했던 그 이상이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만큼 ‘다사다난 多事多難’한 새해를 다시 맞이하게 될 테지만 다시 그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최선의 일’을 찾아보려 합니다.

그렇게 오늘도 변함없이 여기 ‘이곳’에서 지금 이 ‘순간’을 그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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